"반도체공장서 일한 29년3개월...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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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씨제이켐 작성일22-08-22 10:21 조회87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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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피해자 이야기] 세상은 변했지만, 여전히 위험천만한 반도체 회사의 노동환경
"삼성이나 그런 대기업(이미지)을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성숙(가명·1961년생)씨가 말했다. 그는 한 반도체 공장 조립공정에서 만 29년 3개월을 근무했다. 한국에는 삼성이나 하이닉스 외에도 많은 중·소규모 반도체 생산공장이 있다. 이씨는 이 중 여러 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첨단산업이다. 하지만 이씨가 일했던 곳들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규모가 작을수록 더 그랬다. 이씨는 마지막 10년을 근무한 B반도체 생산공장에 대해 "여기는 완전 옛날"이라며 "1970~1980년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B반도체는 A반도체의 하청업체다. 이씨는 원청인 A반도체에서 일하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한 뒤 하청업체인 B반도체에 재입사했다.
2015년 겨울, 한 달 가량 약을 먹었는데도 감기가 낫지 않았다. 얼굴이 누렇게 떴고 일을 하다 코피를 쏟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대학병원에서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어서 직전 3년 동안 병원 한 번 간 적 없었던 그였다.
"혹시 벤젠을 다루셨나요?"
이씨의 직업을 들은 대학병원 의사가 이씨에게 물었다. 이씨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물질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모기에 물렸을 때 소독을 한다며 이소프로필알콜(IPA)를 몸에 바르기도 했다. IPA는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로 알려져있다.
의사는 아무래도 산업재해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 도금실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했고 중국으로 파견된 엔지니어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씨는 산재 신청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직업성 암을 찾아내는 시스템이 사실상 거의 전무한데, 그의 경우 운이 좋아 의료시스템에서 '걸러진' 사례였다.
2019년 1월, 이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 인정은 기대하지 않았다.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로 알려진 황유미씨조차 11년이 지나서야 사과·인정 받았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씨의 백혈병이 '산재'라는 의견을 냈다. 역학조사 단계에서 산재를 인정받는 건 매우 드물다. 보통 역학조사 결과는 "위험요소에 노출된 것은 맞지만 그 수준이 낮아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식이다. 이씨의 작업환경이 그만큼 위험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씨와 최근 화상인터뷰로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요즘 몸 상태는 어떤가.
"(병이) 올해 다시 재발을 해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2017년, 2020년, 2022년에 재발했다. 치료하고 괜찮으면 집에 있다가 재발하면 병원에 오고, 2016년부터 계속 그런 상황이다. 치료가 한 번에 되는 사람도 있는데 저처럼 계속 재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 산업재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나.
"(그땐) 못 했다. 몸이 너무 아프니까 산재인지 뭔지 경황도 없었다. 의사가 산재로 인정받아야지 그나마 보탬이 된다고 해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다음에 신청하게 됐다."
- 일하면서 '이거 위험하겠다' 생각한 적이 있나.
"몰딩 작업을 할 때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반도체 기판에 발라서 오븐에서 과자 굽듯이 굽는다. 오븐에 자재를 넣고 빼기 위해 문을 열 때마다 냄새가 확 난다. 작업자가 그 냄새를 다 들이마신다. 그때 '몸에 안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저 마킹을 할 때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킹 작업이 끝나면 장비 안에 재가 많이 떨어져있다. 쇳가루와 플라스틱 조각이다. 사람 몸을 생각하면 청소기 같은 걸로 재를 빨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에어'를 사용해서 재를 그냥 날려버린다. 그러면 작업자들이 흡입할 수밖에 없다. 옷에도 쇳가루가 막 붙어있었다."
- 오븐을 얼마나 수시로 여닫았나.
"기본으로는 125도 온도에 90분이지만, 횟수를 딱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작업에 따라서는 10분 후에 꺼내는 것도 있다. 사람 별로 작업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공장 내에서는 오븐을 계속 열고 닫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븐을 여닫을 때만이 아니라 뜨거운 자재를 꺼내서 식히는 동안에도 냄새가 난다."
- 화학물질도 직접적으로 많이 다뤘나
"IPA와 아세톤을 많이 사용했다. 부품이나 작업공간을 닦을 때 사용했고 몸에 사용하기도 했다. 에폭시 작업을 하다보면 가운이나 손에 묻는다. 그걸 닦아낼 수 있는 게 IPA뿐이다. 다른 걸로는 닦이지 않는다. 그냥 공업용 알코올인 줄 알고 모기 물렸을 때도 소독을 한다며 IPA로 닦았다. 이소프로필알코올이라는 정식 이름은 노무사로부터 처음 들었다."
보호장구 착용 '권유'조차 없었던 회사... "주6일 근무인데도 임금은 최저"
이씨가 맡았다는 냄새에는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돼있었을 것이다. 에폭시 수지가 가열되면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하는데,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2년 이를 백혈병 유발요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즉 둘 모두 급성골수백혈병과 관련한 직업적 유해요인인데, 30년 동안 이씨는 이런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팀장으로 일할 때는 '안전감독관'의 질문에도 답한 적이 있지만, 이런 내용은 몰랐단다.
구체적인 위험성을 몰랐기에 보호장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지 못했다. 회사는 보호장구 착용을 강제는커녕 권유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서 마스크를 나눠줬다. 필터조차 없는 나일론 마스크였다. 이씨는 "마스크가 얼마나 헐거웠던지 한 동료는 김치 담글 때 거름망으로 썼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보호장구를 '비치'라도 해두지만, 작은 기업에서는 그런 시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대기업이 아닌 반도체 공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마주하는 작업환경은 어떠한가.